라이선스 평생권이라는 유혹에 졸업 논문을 걸 뻔했습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맞아 논문 레이아웃을 꾸미고 포스터까지 준비하려니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 월 구독료가 부담스럽더군요. 학교 계정으로 주어지는 기본 플랜은 포토샵만 포함돼 있었고, 프리미어·애프터 이펙트·일러스트레이터까지 모두 쓰려면 1년에 30만 원이 넘는 추가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학회 참석비와 생활비를 합치면 이미 적자였기에, 저는 잠을 줄여가며 저렴한 대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디자인 전공 커뮤니티에서 “어도비 전 제품 평생 라이선스 7만 9천 원”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게시자는 “북미 교육기관과 제휴한 합법 계정”이라고 강조했고, 댓글 창에는 “결제 완료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짧은 후기들이 줄줄이 달려 있었습니다.
‘평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달콤함은 생각보다 강력했습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졸업 후에도 부담 없이 연구 자료를 편집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저는, 주저하지 않고 판매자에게 쪽지를 보냈습니다. 확인용으로 받은 스크린샷에는 포토샵과 프리미어 로고가 한 번에 켜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 대시보드가 담겨 있었고, “유효 기간 무제한”이라는 배너가 화면 위쪽에 크게 붙어 있었습니다. 제 눈에는 완벽해 보였지만, 동시에 ‘어도비가 평생권을 공식으로 준다고?’라는 합리적 의심이 뒤늦게 고개를 들었습니다.
할인이라 쓰고 평생이라 읽다
판매자는 학생 인증만 하면 24시간 내로 계정을 만들어 준다며, 결제는 간편송금으로 받고 있었습니다. 무통장 입금 시 수수료가 덜 든다며 별도의 카드 결제 방법을 안내하지 않은 점이 첫 번째 걸림돌이었습니다. 또 계좌 주인 이름이 판매자 닉네임과 달랐고, 심지어 개인 명의였습니다. 제가 “사업자 통장이 아닌가요”라고 물었더니 “해외 결제라 환전 수수료 문제로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설명은 그럴듯했지만, 어도비 같은 대기업이 환전 수수료 때문에 개인 통장을 쓸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러보니 후기들은 전부 일주일 안에 작성된 것들이었고, 닉네임 구조도 비슷했습니다. “라이선스 잘 들어왔어요”라는 한 줄만 채워진 게시글이 반복되는 모습은 연구 데이터에서 발견되는 노이즈 패턴처럼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졸업 전시 일정은 다가오고, 포스터 레이아웃은 미완성이었습니다. 조급한 마음이 합리적 판단을 좀먹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저는 어쩐지 결제를 클릭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의심이 번지는 결제창
휴대폰 은행 앱을 켜고 계좌번호를 붙여넣는데, 수취인 정보가 잠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입금 직전 단계에서야 자동으로 뜬 이름은 계좌 주인이 아닌 생소한 영어 이니셜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손목이 굳어졌습니다. 뒤늦게 검색해 보니, 해당 이니셜은 해외 불법 라이선스 딜러 리스트에서 몇 번 언급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창을 닫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접속해 판매자에게 “정발 버전 맞냐”고 재차 물었지만, 3분 넘도록 답이 없더군요. 그 사이 게시글 댓글에는 “계좌 확인 부탁드립니다”라는 구매 희망자의 글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다급해진 저는 학회 준비 때문에 잠시 꺼 두었던 브라우저 검색 탭을 다시 열었습니다. “어도비 평생 계정 합법 여부”라는 키워드로 찾아본 결과, 대부분이 “교육 라이선스라도 평생 소유는 불가능하다”는 글이었습니다. 어도비 정책상 모든 교육 플랜은 학교 등록 상태가 끝나면 만료된다고 적혀 있었고, 설령 교직원 이메일로 가입하더라도 평생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사실상 ‘탈옥 계정’을 되파는 수법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메신저 한 줄이 불러온 확신
보류 상태로 두었던 결제창을 최소화하고, 저는 몇 달 전 친구가 공유해 준 정보 모음 사이트를 떠올렸습니다. 바로 먹튀위크 였습니다. 처음엔 중고 거래 검증용으로만 사용했지만, 이곳에 소프트웨어 관련 사기도 정리되어 있음을 기억해 냈습니다. 사이트 검색창에 계좌번호 일부와 판매자 닉네임을 넣었더니, 최근 일주일 동안 같은 수법으로 피해를 본 사례가 두 건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입금 후 연락 두절” “어도비 계정 잠금 조치”라는 짧은 후기만으로도 상황은 충분히 명확해졌습니다. 한 번 더 결제 버튼을 눌러 보려던 마음은 그 자리에서 꺾이고 말았습니다.
판매자에게 “먹튀위크에 검색되는데 설명 가능하냐”고 메시지를 남기자마자, 채팅방이 ‘상대방이 나갔습니다’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닉네임 또한 커뮤니티에서 사라졌습니다. 저는 캡처해 둔 대화와 계좌 정보, 그리고 사이트 링크를 커뮤니티 관리자에게 전달해 추가 피해 신고를 마쳤습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던 댓글 알림은 30분 후 멈췄고, 게시글은 운영진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소프트웨어보다 비싼 교훈
한바탕 소동이 끝난 뒤 남은 건 안도의 한숨과 7만 9천 원짜리 유혹을 이겨 냈다는 뿌듯함이었습니다. 결국 학교 도서관과 컴퓨터실을 예약해 부족한 기능을 채웠고, 할인 기간에 맞춰 합법적인 학생 플랜을 결제했습니다. 비용은 예상보다 들었지만, 계정이 정지될 걱정 없이 논문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가치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이번 경험을 통해 네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 평생이나 무제한이라는 표현이 붙은 소프트웨어는 한 번 더 의심합니다.
- 개인 명의 계좌에 송금을 요구하면 설명이 어찌 됐든 거래를 중단합니다.
- 댓글 패턴이 지나치게 유사하면 자동 생성 후기일 가능성을 먼저 고려합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먹튀위크 같은 집단 지성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최소 두 번 검증합니다.
어도비 정품보다 비싼 것은 데이터와 시간, 그리고 제 연구 윤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다음번에 또 비현실적인 가격표를 만나더라도, 저는 ‘결제’ 대신 ‘검증’을 먼저 클릭하려 합니다. 그래야만 학위 논문도, 지갑도, 그리고 제 이름이 담긴 연구 결과도 안전할 테니까요.